
매달 꼬박꼬박 내는 건강보험료. 그 재원이 어떻게 쓰이는지 직접 체감하기는 쉽지 않지만, 이번 달부터 약국에서 받는 약값 구조가 조용히 바뀌기 시작했다. 보건복지부가 추진해온 약가제도 개편이 2026년 7월부터 단계적으로 시행에 들어간 것이다. 13년 만의 대대적인 손질이라는 평가가 나올 만큼, 규모가 작지 않다.
이번 개편의 핵심은 크게 세 가지다. 복제약(제네릭) 가격을 낮춰 건강보험 재정을 아끼고, 그 여유 재원으로 희귀·중증 신약의 보험 등재를 빠르게 추진하며, 연구개발(R&D)에 적극 투자하는 제약사에는 혜택을 주는 것이다. 환자 입장에서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하나씩 짚어본다.
복제약 약가 산정률, 53.55%에서 40%대로 낮아진다
지금까지 복제약(제네릭)의 건강보험 약가는 오리지널 의약품 가격의 약 53.55%로 산정되는 구조였다. 이번 개편으로 이 기준이 40%대 수준으로 낮아진다. 오리지널 약값을 1만 원으로 가정하면, 그동안 5,355원에 공급되던 복제약이 앞으로는 4,000원대로 내려오는 셈이다.
- 신규 등재 복제약부터 즉시 적용
- 기존 등재된 복제약 중 가격 조정 없이 53.55%를 유지해온 약제는 3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인하
- 조정 대상 품목은 약 3,000개, 정부 추산 연간 약 1조 원의 재정 절감 효과 기대
- 안정적 수급이 필요한 퇴장방지의약품, 희귀의약품 등은 인하 대상에서 제외
복제약 난립을 억제하기 위해 계단식 약가 인하가 적용되는 등재 순번 기준도 기존 21번째에서 13번째로 앞당겨진다. 같은 성분의 복제약이 지금처럼 무분별하게 늘어나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다.
희귀·중증 신약, 건강보험 등재 기간 240일 → 100일로 단축
지금까지 희귀질환 신약이 건강보험에 등재되려면 심평원 평가·약가 협상·건정심 의결 등 복잡한 절차를 거치며 최대 240일이 걸렸다. 치료를 기다리는 환자에게는 너무나 긴 시간이었다. 이번 개편으로 이 기간이 100일 이내로 단축된다.
신속 등재 절차는 올해 건강보험 시범사업 형태로 먼저 가동된 뒤 관련 규정을 정비해 정식 제도로 굳힐 계획이다. 단, 빠르게 등재된 약에 대해서는 이후 실제 임상 효과를 사후 평가해 결과를 약가에 반영하는 관리 시스템이 함께 운영된다. 일단 등재해두고 효과가 입증되면 계속 유지하는 방식이다.
R&D 많이 투자할수록 높은 약가 유지 — 혁신기업 우대 강화
이번 개편의 또 다른 축은 연구개발 투자 비율에 따라 약가 혜택을 차등 적용하는 것이다. 기존에는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을 받으면 일률적으로 68% 가산을 받았지만, 앞으로는 매출 대비 R&D 투자 비율 상위 30% 기업만 68%를 유지하고, 그 외는 60% 또는 55%로 낮아진다.
- R&D 투자 상위 30% 혁신형 기업: 약가 가산 68% 유지
- R&D 투자 하위 70% 기업: 60% 적용
- 국내 매출 500억 원 미만 또는 최근 3년 내 임상 2상 승인 1건 이상 기업: 55% 적용
- 원료를 직접 생산하거나 국산 원료를 쓰는 국가필수약: 최대 10년 약가 가산 유지 가능
사용량·약가 연동제에서 혁신형 기업의 인하율 감면 비율도 기존 30%에서 50%로 높아진다. 결국 “R&D에 투자하지 않으면 높은 약가를 유지할 수 없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업계 반발과 정부 입장 — 팽팽한 줄다리기
제약업계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등 주요 단체들이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개편 재검토를 촉구했다. 업계 CEO 긴급 설문 결과, 개편안이 원안대로 시행되면 59개 기업의 R&D 투자가 평균 25.3% 줄어들고, 설비 투자는 32% 감소하며, 약 1,691명의 고용 감축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왔다.
반면 정부는 “이번 개편은 단순한 가격 인하가 아니라, 혁신 가치와 필수의약품 수급 안정, 재정 관리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구조 재설계”라는 입장이다. 2012년 반값 약가제 이후 13년 만의 개편이니만큼 진통이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약가제도 개편은 제약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복제약 가격이 내려가면 건강보험 재정에 여유가 생기고, 그 여유는 희귀·중증 환자들이 더 빨리 신약을 처방받는 데 쓰인다. 반대로 복제약에 의존해온 제약사들의 수익이 줄면, 장기적으로 신약 개발 여력이 함께 줄어들 수도 있다. 어느 쪽이 더 나은 선택인지는 앞으로 몇 년간의 실제 결과를 통해서만 알 수 있다. 환자와 소비자 입장에서는 약가 구조가 어떻게 바뀌는지 눈여겨볼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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